안충영/중앙대 석좌교수·경제학아베 신조
일본 신임 총리의 초(超)엔저 정책이 이제
국제적으로 환율전쟁의 전운을 감돌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른바 ‘아베노믹스’와 우경화의
기치 아래 재집권에
성공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시절부터 엔화의 초고속 약세화를 시현, 20년에 걸쳐
수렁에 빠진 일본 경제의 재건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엔화는 불과 4개월 만에 달러당 15% 이상 가치가 하락해 90엔 아래로
떨어졌다.
아베노믹스는 인플레이션이 2%까지 올라가는 것을
용인할 만큼 무제한 양적완화를 추진해 공공투자를 늘리고, 엔저에 힘입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며, 그에 수반하는 투자 활성화를 통해 장기불황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복안이다. 일본의 주가가 급등하고 경기도 지금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내각은 통화가치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일본 중앙은행에
대해서도 양적완화를 위해 강도 높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적
금융위기 와중에서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신인도가 급락하고 곧이어 남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한
국면으로 표면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엔화에 대한 기형적 수요 팽창이 그동안 엔화 가치의 상승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유로존 위기도
유럽은행연합으로 큰
그림을 그려 놓으면서 큰 고비를 넘기자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사실 일본의 입장에서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5년째 금융완화 정책을 쓰고 있고 2010년부터 유럽 또한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펴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본도 경제 살리기 수단으로 양적완화 정책의 불가피성을 정당화하고 있다.
세계 주요 경제대국이 자국의
위기 극복에 골몰한 나머지 국제적 합의나 다른
나라 사정을 배려하기엔 제 코가 석자나 빠져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의 엔저 정책
기류를 어느 정도 기정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환율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국제 공조(共助)에 나서야 한다. 아베의 양적완화 정책은
선진국 중 일본이 최대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국채 발행의 한계가 내부적으로 큰 제동장치가 될 것이다. 일본의 주변국에 대한 급격한
우경화 노선은 일본의 수출과 직접투자가 중국과 한국에 밀접한 점에 비춰볼 때 아베노믹스와 이율배반임이 지난 연말 도쿄에서 개최된 제20차 한·일
포럼에서 지적됐다.
그리고 아베의 엔저 정책은
시장의 힘을 훨씬 뛰어넘어 국제적 공조 없이 일본
단독으로 근린(近隣) 궁핍화의
요소를 다분히 지닐 만큼 인위적 개입이라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제약을 받을 것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독자적 행보에 대한 국제적 경고음이 벌써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자국의 경기회복과
수출 촉진을 위한 근린 궁핍화의 인위적 평가절하를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의 자동차 업계도 벌써 미 행정부에 일본의 초엔저 정책에 대한 보복조치를
제안하고 나섰다.
엔화 약세로 국내 유입 일본인 관광객 수가 최근 30% 이상 줄어들고 해외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도전받고 있다. 우리는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서 빠른 경기회복을 위해 무역 흑자에 상응하는 원화의 강세화를 유예시킬 수
있었다. 이제 환율 훈풍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미국·EU·일본의 양적완화 정책 기류를 타고 흘러 들어올 수 있는 국제 핫머니의 유입에 대한
안정적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우리는 연구·개발(R&D)을 통한 체질개선의
기회로 삼고 제품의 비가격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길 외에 왕도(王道)가 없다.